04.에세이 - 일하고 산다

학벌은 세탁이 안돼요.

Youngchan Jo 2023. 2. 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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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 국립대인 충북대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모교인 충북대학교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나는 내 학벌이 부끄럽지 않다. 그러나 이 사실과는 별개로 나는 학벌 컴플렉스*가 있다. 아니 있었다. 아니 지금도 있다. 에이 씨. 잘 모르겠다. 이 학벌 컴플렉스는 있다가 없다가 하지만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Complex, 한국어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콤플렉스'가 맞지만 그냥 우리에게 더 익숙한 발음인 컴플렉스로 쓰려고 한다. 시적 허용처럼 '에세이적 허용'이라고 해두자.)

 

학벌이 부끄럽지 않은데 어떻게 컴플렉스가 있어요?라고 누군가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컴플렉스는 부끄러움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컴플렉스의 정신분석학적 정의는 ‘인간의 마음 혹은 심리에 영향을 주는 내면의 구조 혹은 힘’이다. 나의 학벌은 나의 마음과 심리에 영향을 주는 구조 혹은 힘이다.

 

나는 학벌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적이 없다.(내가 알기론) 아니 오히려 지방 국립대라는 이점으로 지역 대학 우수인재 선발 경로를 통해 LG화학 오창 공장에 인사 담당자로 입사할 수 있었다. 정상적으로 지원했다면 인사 업무로 직장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인사 업무는 고학벌이 많다. 과거에 어떤 선배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에 의하면 인사 담당자가 고학벌이어야 인사고과의 결정이라든지 이동과 배치의 의사결정이라든지 그런 것들에 위엄이 선다라나 뭐라나.

 

논지를 살짝 틀어보자. 우리나라에는 소위 대학의 등급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기업에서 자체적인 대학 등급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등급에 따라 ‘대학 점수’를 매긴다. 낮은 등급의 대학을 졸업하면 서류전형에서 얻을 수 있는 총점이 적다. 검색해보니 아래와 같은 자료도 있더라.

 

(중앙일보) 인사팀이 선호한 신입사원 대학…2위 서울대, 1위는

 

아파트 청약 같은 걸 생각하면 쉽다. 다자녀가 점수를 많이 얻듯이 고학벌은 점수를 많이 얻는다. 반대로 낮은 학벌은 웬만한 다른 추가 점수가 없다면 면접의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삼성은 과거부터 학벌을 보지 않는 자체 시험인 GSAT로 인재를 채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블라인드 채용(출신 학교를 쓰지 않는)도 많이 늘었다.

 

그런데 블라인드 채용 결과, 고학벌의 비중이  높아져서 지방대 의무 채용을 제도적으로 마련한 사례도 있다는 것은  비밀이다. 결국 고학벌은 학벌 외의 경험  면접 전형에서도 우수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고학벌은 일도 잘하는가?  부분은 다른 글을 통해 다뤄보고 싶다. 우선  글은 나의 학벌 컴플렉스에 대한 주제다.

 

나는 고학벌 우대 현실에 대해 불평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우대받아야 마땅하다. 좋은 머리를 타고난 이들도 분명 있지만 좋은 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은 내가 공부하기 지겨워서 놀거나 쉴 때, 주말에 늦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공부를 했기에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회에서 이득을 취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취하는 이득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나는 학벌 컴플렉스가 있다. 인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내 주변에는 온통 고학벌뿐이다. 소위 말하는 SKY 서성한중경외시 미만의 학교를 본 적이 없다. 물론 어딘가에서는 분명 있겠지만 내가 13년 동안 경험한 직장의 인사부서에서는 없었다. 이것은 묘한 기분이다. 하얀 백조들 사이에 까악 까악 하고 있는 까마귀가 된 기분이랄까.

 

다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나는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여 LG화학 오창에서 인사 업무를 시작했다. 처음 담당한 업무는 노무관리였는데, 인적자원개발 분야로 이동하고 싶었던 나는 중앙대학교 인적자원개발 대학원에 입학했다. 금요일과 토요일 수업을 듣는 이른바 전문대학원이었다. 2년 반 뒤,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나는 그룹의 인재개발원인 LG인화원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LG인화원도 SKY 서성한중경외시 미만의 학교 출신은 없었다. 나는 5년 차에 좋은 기회를 얻어 aSSIST(서울과학종합대학원) Big Data MBA에 입학했다. 역시 금요일과 토요일 수업을 듣는 전문대학원이었다. 졸업 후 나는 석사를 2개 보유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학벌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하고 석사를 2개씩이나 취득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인적자원개발 업무를 하고 싶어서, 그리고 Big Data를 공부하여 나의 경쟁력을 높이고 싶어서 공부를 한 것뿐이다. 학벌 컴플렉스를 극복하고 싶어 석사를 했든 그렇지 않든 주변 사람들이 어떤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든 관계없이 2개씩이나 취득한 석사 학위는 나의 학벌 컴플렉스를 지워주지 못했다.

 

‘고3 때 더 열심히 공부할 걸.’이라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고 과연 지금의 생각처럼 더 열심히 공부할까? 아닐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조차 찾지 못했다. 결국 나는 여전히 학벌 컴플렉스가 있다 없다 하는 상태에 있다.

 

나는 왜 학벌 컴플렉스가 있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부러워서? 나만 SKY 서성한중경외시가 아니라 지방 국립대인 게 이상해서? 아니면 시간이 오래 흘러 팀장이나 임원 후보가 되었을 때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에게 밀릴 것 같아서?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런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인지 나의 기우일 뿐인지 모른다.

 

직장에서 만나 가깝게 지내는 사람 중 우리가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진짜 ‘하버드 심리학과’ 학부 졸업생*이 있다. 나보다 네 살 어린, 매우 똑똑한 친구다. 내가 그 친구에게 나의 학벌 컴플렉스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나에게 명쾌하게 이야기했다.(*여담이지만 이 친구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툭하면 '야, 너 하버드 나온 거 맞아?' 라는 농담을 듣는다.ㅎㅎ 얼마나 싫을까..)

 

“형, 나는 데이터 분석 못해. 근데 형은 할 수 있어. 인사 담당자 중에 그거 할 수 있는 사람 몇 명이나 있겠어? 형은 경쟁력 있어. 그거면 된 거 아냐?”

 

아, 그런가? 하고 잠깐 생각했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은 복잡하다(컴플렉스는 복잡하다, 복합적이다라는 의미도 있듯). 학벌은 세탁할 수 없다. 외국의 유명 투자은행과 탑 컨설팅 업계에서는 학부 이상의 학위를 보지 않는다고 들었다. 무조건 아이비리그 이상의 학부를 졸업해야 한다. ‘MBA로 돈 주고 세탁한 학위'로는 죄송하지만 입사하실 수 없습니다. 인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컴플렉스의 유무와는 무관하게 ‘학벌은 세탁이 안돼요.’가 되었다. 물세탁도 안되고 드라이클리닝도 안된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세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멋스럽게 살아볼 방법을 찾는 것 밖에 없다. 청바지처럼 말이다. 학벌 세탁 없이(혹은 그럴 필요 없이) 어떻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에 대한 소재는 다음에 써보도록 하겠다. 내가 어느 정도는 증명한 바가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 말하지만, 나는 나의 모교인 충북대학교를 사랑하고 나의 출신을 자랑스러워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학벌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학벌은 세탁되지 않는다. 드라이크리닝도 안된다.

애초에 학벌은 '깨끗하게 해야 하는 세탁의 대상'이 아니다. 아참, 그리고 무엇이든 세탁을 한다고 그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