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에세이 - 일하고 산다 7

재택근무가 없애버린 것

우아한 형제들 사옥에 가면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법 11가지'가 붙어있다. 그중 네 번째가 "잡답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이다."이다. 2017년엔가 사옥에 방문하여 그 글을 보았을 때도 공감을 했었지만 매우 절실히 잡담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 계기는 최근의 재택근무 때문이다. 재택근무에서는 잡답을 나누기 어렵다. 업무가 계획과 효율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잡담은 계획에 없는 비업무에 가깝기에 시간을 할애하기 어렵다. 잡담은 '의도치 않은 우연'이라는 방식으로 사람을 통해 정보를 전파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내가 A라는 동료와 잠시 커피를 마시며 하는 대화 속에 뜻밖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근처를 지나가던 동료 B는 그 아이디어에 본인의 경험을 보탠다. 나와 동료 A, B는 ..

내가 선후배 관계를 증오하는 이유

이 글이 다소 격앙된 논조인 것은 선후배라는 알량한 관계를 들이대며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하거나 대가 없는 노동을 요구하거나 나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을 강요했던 몇 가지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임을 밝힙니다. 모든 '선배'들이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당신이 찔린다면 그건 제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학교와 회사, 그리고 군대 등에는 이른바 선후배라고 불리는 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지위나 나이 따위가 본인 보다 많거나 앞선 사람을 선배, 반대의 경우를 후배로 부른다. 상하 관계가 뚜렷한 선후배 관계는 시키는대로 하라는 상명하복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낸다. '하늘 같은 선배', '까라면 깐다.', '어디 감히' 등의 표현들이 선후배와 관련있다. 선후배 관계의 기준은 매우 명확하고 간단하다. 그저 '먼저' ..

위대한 출퇴근과 조금 덜 위대한 출퇴근

직장인에게 출근을 한다는 것은 매우 위대한 일이다. 일터에 몸을 던져 넣고 기어이 하루치의 노동을 해보겠다는 굳건한 의지의 표명이기 때문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었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일어나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어머니가 눈도 못 뜬 당신의 입에 토스트를 밀어 넣기 전까지는 비몽 사몽하며 잠에서 깰 수 조차 없던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하니 매일 아침에 스스로 눈을 뜨고 옷가지를 챙겨 입고 집을 나서 돈을 벌러 간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가? 직장인에겐 방학도 없어 소중한 휴가를 쓰지 않고서는 평일에 늦잠을 잘 기회 따위도 없다. 참, 이때 우리가 어떠한 기분으로 출근하는지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도록 하자. 굳이 거룩한 목적과 의도가 아니더라도 현..

애매한 재능

일에 진도가 나가지 않아 오랜만에 그 단어를 검색해봤다. [애매한 재능]을 구글링 하면 서적도 나오고 노래도 나오고 유튜브도 나온다. 그런데 나는 늘 위키트리의 글을 클릭해서 본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애매한 재능이 잔인한 이유] 그 재능을 살리려고 열심히 키운다. 하지만 정말 확실한 재능을 가진 사람에겐 못 미친다. 그럼에도 그나마 그걸 제일 잘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변은 그 재능을 치켜세워주지만 실상 보면 그럭저럭인 수준 ※ source : https://www.wikitree.co.kr/articles/639483 맞는 말이다. 애매한 재능으로 태어난 삶이 더 슬프고 고난하고 치열하다. 혹자는 저주받았다고 까지 한다. 탄탄한 육상 트랙에서 고급 러닝화를 신고 바람을 가르는 듯 앞질러 달려가는 ..

개발이나 할 걸 그랬다고요?

2022년 5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글을 읽는 시점과는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최근 게임회사를 중심으로 개발자 연봉 상승에 대한 뉴스가 많다. 그 뉴스를 보고 "이럴 줄 알았으면 개발이나 할 걸 그랬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예의 : 개발자에게 매우 무례한 표현이다. 누군가 여러분의 직무를 언급하며 "XX나 할 걸 그랬다"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보자.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정서가 깔려있는 이 무례한 표현은 본인의 현재 성취는 어렵게 노력해서 얻은 것이고 개발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XX개월만 공부하면 개발자 될 수 있다! 라고 말하는 문구들은 마케팅일 뿐임을 명심하자. 2. 능력 : ..

파워포인트 블루스

나는 파워포인트로 라면도 끓여먹을 수 있다. 농담이 아니다. 파워포인트는 전지전능한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업무 시간을 되돌아보면 파워포인트에 80%, 아웃룩에 20% 정도를 할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워포인트는 곧 업무다. 업무를 잘해야 성과가 난다. 그러니까 파워포인트를 잘해야 한다. 여러분, 파워포인트 단축키를 외우세요. 화려하고 다양한 도식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도록 익숙해지세요.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한편, 파워포인트는 가증스럽다. 정말 말 그대로 망할 놈의 파워포인트다. 위대한 빌 게이츠가 무엇이든 가능하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 소프트웨어 주제에 왜 이렇게 모든 다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인가? 이 전지전능한 파워포인트를 활용하여 영상을 만드는 사람도..

학벌은 세탁이 안돼요.

나는 지방 국립대인 충북대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모교인 충북대학교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나는 내 학벌이 부끄럽지 않다. 그러나 이 사실과는 별개로 나는 학벌 컴플렉스*가 있다. 아니 있었다. 아니 지금도 있다. 에이 씨. 잘 모르겠다. 이 학벌 컴플렉스는 있다가 없다가 하지만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Complex, 한국어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콤플렉스'가 맞지만 그냥 우리에게 더 익숙한 발음인 컴플렉스로 쓰려고 한다. 시적 허용처럼 '에세이적 허용'이라고 해두자.) 학벌이 부끄럽지 않은데 어떻게 컴플렉스가 있어요?라고 누군가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컴플렉스는 부끄러움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컴플렉스의 정신분석학적 정의는 ‘인간의 마음 혹은 심리에 영향을 주는 내면의 구조 혹은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