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알면 더 일을 잘할까?
나는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일을 잘하려면 많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정말 척척박사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르는 게 없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의 경험과 경력을 따라잡기 위해 그 사람들만큼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십 수년을 기다릴 만큼 나는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지식을 쌓아 그들의 경험과 경력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다음의 짧은 글들은 그 과정에서 떨어뜨린 내 마음의 파편이다. 마치 다 들지도 못할 정도로 물건을 많이 사 들고 잰걸음으로 뛰는 듯 걷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건을 떨어뜨리고 것과 같은, 내가 미처 추스르지 못한 감정과 기억들이다.
2011년 11월
2년 째 노무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될 것 같다. 그저 쌓여만 있고 도무지 쓸모를 알 수 없는, 무엇이 들었는지 모를 묵직한 가마니가 될 것 같다. 같은 업을 하는 분들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지금 맡고 있는 일에서는 희망을 버린 지 오래다. 고생스럽겠지만 나중에 노고를 인정받을 수 있고 잘 승진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HRD)은 저만치 멀리 있고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소위 말하는 '비전공자'이기 때문이다.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입사한 지 2년째, 지금이 바로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나는 불현듯, 그리고 과감히 내 몸을 대학원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던져 넣었다.
2012년 4월
어쩌면 이것은 시위에 가깝다. 내 직무를 바꿔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대신, 나의 소중한 토요일 9시간을 학교 수업으로 가득히 채움으로써 무언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이 대학원을 다닌다. 이 한 문장은 의아함이자 부러움이며 칭찬이자 비판의 대상이다. 모든 것의 대가는 예상했던 것보다 비싸고 무겁다. 시간과 맞바꾼 지식 증가의 효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등록금 고지서는 꼬박꼬박 발급된다. 이런 일에 누락과 실수는 없다.
2012년 5월
대학원을 다니며 치열하게 보냈던 시간들이 다소 허탈하게도 대학원의 첫 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원하던 직무를 맡을 수 있는 회사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룹의 연수원이다.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그곳.
2012년 8월
석사까지 한 선배에게 지금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니, 회사에서 그 말을 꺼내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한다. 회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당신은 왜 공부를 하셨나요라는 말이 목구멍에서만 맴돌았다.
2013년 1월
대학원을 1년 동안 다녔다. 다음 학기는 휴학을 해야 한다. 새로운 직무는 주말에도 공식 과업이 많다. 주말에 일을 하니 수당도 많이 들어온다. 등록금을 내는 대신 수입이 늘어나니 기분이 평안하다. 하하.
2016년 6월
어찌 됐든 학기를 마치기 위해 복학했다. 이전과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안다. 수업은 이미 아는 내용이 많다. 학교에서 접하는 이론은 현업의 빠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다른 사례에서 배우기보단, 내 사례를 나누는 일에 더 큰 가치를 느낀다.
2017년 3월
논문을 쓰기 위해 매주 토요일 학교로 나선다. "선생님의 글은 내 얼굴이에요."라고 또박또박 힘을 주어 이야기하는 지도 교수님의 눈동자가 깊고 짙다. 요행은 불가능하다. 지도 교수님은 어떤 이론이든 어떤 연구자든 필요한 자료와 관련된 논문이나 단행본을 종이 한 장 들어갈 틈 없어 보이는 빼곡한 책장에서 단번에 꺼내 든다. 저런 분에게 구글링이 필요하기나 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교수님이 말하는 연구자의 훈장은 너무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있어 생기는 노안과 거북목과 디스크이다. 이것들이 없는 자는 연구자가 아니라는 말에 뭐라 답할 수 있을까 싶다.
2017년 8월
빨간 논문 승인 도장을 받았다. 논문을 찍었다. 도장은 찍어나 봤지 누군가에게 받아보는 경험은 대단히 낯설다. 책은 사기나 해봤지 내 이름이 새겨진 책 모양의 이것은 익숙하지 않다. 이제 끝난 건가? 이제 나는 석사 학위를 받게 된 것인가? 앞으로 무엇이 바뀔까?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기나긴 통로를, 그것도 5년 만에 통과했다는 기쁨을 만끽하는데 집중한다.
2017년 9월
나는 대책도 없이 또 손을 들었다. Big Data와 AI가 앞으로 중요해질 것이라는 말에, 누군가 도전해서 공부해보라는 말에 자원했다. 이왕하는 김에 깊이 있게 학습하고 싶어 학위 과정을 찾아 들이 밀었다. 이 과정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기에 돈에 대한 부담은 없지만 5년 전과는 다른 나이와 체력이 마음에 걸린다. 다른 사람의 시선도 더 날카롭다.
회사에서 무엇인가를 받으면 그 보다 더 큰 것을 돌려줘야 한다. 아니 그 반대다. 회사는 절대 손해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줄 때는 그 보다 큰 것을 기대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저런 걱정이 있음에도 나는 홀린 듯이 다시 대학원에 발을 들여놓는다. 또 석사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백 개의 석사 학위보다 한 개의 박사 학위가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어쨌든 두 개가 한 개 보다는 나으니까. 라며 스스로에게 당위성을 부여해본다.
2020년 2월
두 번째 논문을 마무리했다. 이제 나는 석사가 두 개다. 척척석사 정도는 되려나? 아니다. 척척박사라는 말은 있지만 척척석사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왜 내가 대학원에 가게 되었는지 돌이켜본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뭘까. 나는 무엇을 추구했나? 이제 나는 내가 그토록 선망했던 10년 차 이상의 직장인이 되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자 나는 깨닫게 되었다. 지식이 부족해서 회사 일을 못하는 경우는 0에 수렴한다. 심지어 지식이 부족한 경우는 구입도 가능하다. 사람을 쓰든, 자료를 사든, 어쨌든 회사는 이런 일에 돈을 기가 막히게 잘 쓴다. 일을 되게 만드는, 일을 잘하는 것은 결국 '실행력'이다. 학위를 취득해서 지식이 늘어난다고 일을 잘하게 되지 않는 것이다. 학위와 일을 잘하는 것이 비례했다면 회사는 박사들의 세상이었을 것이다.
2021년 5월
하버드 학부를 졸업한 면접관은 내 이력서를 뚫어져라 보다 말했다. "공부를 참 많이 하셨네요." 네, 저는 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적극적으로 행동해왔습니다. 저는 전문성을 향상할 수 있는 방법이 대학원 진학이라고 생각했고, 최선을 다해 업무를 병행하며 연구를 했습니다. 나는 대답했지만 거짓말이라고 또 하나의 내가 받아쳤다. 최선을 다하긴 했으나 공부를 할 때 당연히 회사의 업무는 어느 정도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최선을 다한 것이 업무인지 연구인지 병행을 위한 균형을 잡는 일인지 이제 기억을 정도로 희미해져서 내 말이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2021년 6월
새로운 회사에 합격했다. 분명 내 석사 학위는 도움이 되었다. 이직을 위해 이력서를 제출할 때마다 내야 하는 학업 증명서 수수료 2,000원 혹은 3,000원이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로 드는 것이 때때로 무의미하고 아까웠던 나의 마음을 조금은 달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또 대학원에 발을 딛게 될까? 모르겠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미 나는 12년의 직장 생활 중에 9년 정도를 대학원생으로도 살아왔다. 이런 삶을 척척석사로 마감하는 건 조금 아쉬울 것 같다. 그저 그뿐이다. 더 많이 배워 더 일을 잘하겠다는 치기 어린 마음보단, 왠지 모르게 남아있는 학업의 부채 의식이 또 나를 움직이게 만들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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